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in Albuquer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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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주와 함께라면      

                                                            성낙훈 집사

    우선 항상 내 곁에 함께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다. 나는 지금 교회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과분한 직책을 맡고 있으며, 또한 집사라는 명칭도 가지고 있다. 과연, 나는 이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을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시기는 어린 시절부터 였으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마음은 몇 해전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겪었던 나의 영적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으며, 이제 나의 이야기를 다른 성도님들과 공유하며 다시금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미국에 와서 인연을 맺은 한인 교회는 지금 내가 봉사하고 있는 앨버커키 한인 감리교회이다. 처음에는 이곳 교회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질 못했다. 미국의 유학 생활은 즐거움과 희망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두 아이의 아빠로서 대략 3년간의 코스웍 과정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종합시험(박사과정의 학생들이 모두 이수해야 할 학점을 마치고 나면, 논문을 쓰기 전에 치워야 하는 마지막 시험)을 잘 마치고 한국에 잠시 귀국을 했었다. 그때의 나의 기분은 마치 학위를 취득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과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곧 귀국이라도 할 것 같이 우쭐해 있었던 나의 마음은, 이내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고통으로 바뀌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지도교수의 태도는 어찌된 일인지 바뀌어져 있었고, 나에게 이유 없는 고통과 시련을 강요하고 있었다. 약 일년 정도의 세월을 지도교수의 무성의한 지도를 받으면서 보내야만 했고,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나는 꿋꿋이 논문을 썼다. 하지만, 얼마 후 지도교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나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제 더 이상 지도교수로서 나를 돌볼 수 없다고 했고, 또한 다른 학과 공부를 하라는 등,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을 하였다. 한국에서 대학입학 때부터 줄곧 한길을 걸어왔던 나에게, 다른 인생을 살라는 그의 말은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때의 심정은 글로 표현하기 힘이 들 정도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 한동안 후유증으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그 고통의 순간을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정신적인 고통이 나의 마음속 깊이 파고 들어왔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서 가슴이 져며왔고, 그로 인해 항상 가슴이 답답하였고, 식사를 해도 소화가 잘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한 상태가 꽤 여러 달 지속되었고, 정신과 육체는 황폐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표 없이 떠다니는 배처럼 허송세월을 보내야만 하는 그런 상태였다. 그때 마침 성경책이 눈에 띄었다. 모든 것이 자포자기 된 상태에서 시간적인 여유는 많았기에, 마음을 돌이켜 이제까지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던 성경책을 한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신약부터 읽기 시작했다. 성경의 구절들은 나에게 참된 삶의 가치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였고,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성경책을 열심히 얽으면서부터 활력을 되찾은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차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후 얼마 안 가서, 우리 가족은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그때부터 최건영 집사님이 인도하시는 성경공부반에 참여하게 되었고, 또한 교회봉사의 마음도 싹이 트기 시작했다. 전 지도교수와의 약 일년간의 길고 긴 시련의 시기는 성경읽기, 성경공부반에서의 시간들, 그리고 나를 위해 소리 없이 기도하시는 분들 또한 용기를 주시는 분들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지도교수와의 인연은 끝이 나고, 나는 새로운 지도교수님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는 전 지도교수 이외에, 두분의 교수님이 더 계셨다. 하지만, 한 분은 저 지도교수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왕래가 거의 없었고, 다른 한 분 또한 무척 엄격해 보이는 분이셨기에, 나로서는 무척 난감한 상태였다. 용기를 내어 논문 지도교수님에 대한 상담을 위해 교수님들을 만나보러 갔다. 가는 길에 마음속 깊이 기도를 했다. 어떠한 결과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약간은 긴장된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이미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용기가 백배해져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있었기에...... 성경구절을 보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는 말이 있는데, 믿음이 없었던 때에 그 구절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진실로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있었으며, 또한 마음으로 진정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마음의 평안함을 가지고서 만난 두 교수님들은 나에게 의외로 따뜻하게 격려를 해 주었고, 결국 그 교수님들 중 학점에 엄격하신 교수님이 나의 지도교수님이 되었다. 아마도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지도교수님과 새로운 마음으로 논문을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마음 굳게 결심했다. 매일 논문을 쓰기 전, 약 30분에서 1시간 가량은 성경읽기와 기도로 시간을 보내기로...... 누가복음 11:9절 말씀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며,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주님께서는 죄 많은 나에게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졌다. 항시 지도교수님과 만나기 전에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 간구하고 교수님을 만났다. 마침내, 간절한 기도 생활 때문에, 나는 박사학위를 무사히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온 시련은 정말 잘 된 일이라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러한 시련이 나에게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아직도 많은 시련과 난관을 맞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도 공감하시는 우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항상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혹 이글을 일고 계신 분 중에 시련과 고통을 당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한번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분은 항시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역경도 두렵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