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in Albuquerque
 
광야의 소리 1998.12-A 
 

첫목회의 떨림으로



송종남 목사

알버커키에 온지 벌써 네달이 지났습니다. 처음 알버커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그 도시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은 고사하고, '알버커키'라는 발음이 잘 안되어서 '알바쿠키' '알바쿠키' 하면서 몇 번씩 연습했던 기억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뜻이 계셔서 이곳까지 부족한 저를 인도해 주셨음을 먼저 감사드립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려고 비행기를 탔는데 왠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보였고, 그만큼 알버커키라는 지역이 생소했습니다. LA에 계신 많은 사람들이 NEW MEXICO라 하니까 멕시코로 가는 줄 알고 어떤 후배는 그럼 아이들은 또 스페니쉬를 해야하느냐고 묻기도 했고, 그곳에 호텔이라도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알버커키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서 사실 저도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이곳에 왔는데 따뜻하게 반겨 주시는 성도님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저희 가족 모두가 이곳에 잘 적응을 했고, 하루하루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맡겨진 일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모든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와 교회 부흥을 위한 열정을 뵐 때마다 저 스스로 마음에 감동이 되고,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목회를 시작하던 때의 생각이 종종 나곤 합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한 곳은 경기도 가평의 한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이 모두 18집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14집이 교회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촌 마을이라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거의가 노인부부들이었고, 혼자 사시는 분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교회 온 식구라야 20-30여명 되었었는데 제가 처음 이 알버커키에 와보니까 그와 비슷한 교회 규모라 더욱 가평에서 목회하던 일이 생각 이 납니다. 다만 옛날의 교회 구성원들은 농촌 사람들이었는데 비해 이곳의 교회 구성원들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저는 시골 생활을 안 해본 사람이라 처음 시골에 가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들로 산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뛰어 다녔고, 마을에서 여름에 장마가 있은 후에는 산골길이 파여 나가서 걸어 다니는데 불편하니까 그 마을길을 여럿이 모여서 고치는 '부역'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열심히 참여해서 할 줄 모르는 삽질이지만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했었습니다. 생전 해 보지 않았지만 모내기와 김매기에도 쫓아다니며 농촌 일을 배웠고,(모밥을 얻어먹는 재미도 큰 것이었음) 그러면서 비록 교회에 안나오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그들과 어울리는 중에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가 통하는 농촌 전도사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60년이 되었지만 늘 미자립 상태로 있는 교회를 자립시키기 위해 기도하며 성도님들과 논의 한 끝에 교회가 너무 막다른 산골짝에 치우쳐 있으니까 사람들이 밖에서 교회를 찾아 들어온다는 것은 (버스도 안 다녔음)불가능한 일이니까 교회를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큰 마을로 옮겨 보기로 하고 시작한 것이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여서 온 성도들이 눈물로 봉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성전을 건축하기까지는 금전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또 여러 가지 예상 못했던 어려운 일들이 여름철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때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 장마 비를 맞으며 교회를 완공하고자하는 성도님들의 눈물과 기도를 어여삐 보시고 하나님께서 성전을 잘 마무리 하도록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사실 저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늘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더구나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들과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새내기 전도사에게는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신학교 4년 공부한 것이 전부인데 처음 교회를 담임해서 섬기는 것도 떨렸고, 모두다 저보다 나이 많은 성도님들 앞에 서서 설교를 한다는 것도 여간 떨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이,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데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밀고 나갔던 것도 사실은 여간 떨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가만히 그때 일을 뒤돌아보면 그렇게 인간적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나의 등뒤에는 항상 든든한 '빽'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그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 모든 일들을 감당 할 수가 있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뒤뚱뒤뚱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에 겁이 잔뜩 나지만 부모가 뒤에서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용감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걸음마를 배우듯이, 나의 등뒤에서 인자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고, 행여나 넘어질까 지켜주신 주님의 그 손길이 있었기에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저의 목회의 현장이 이곳 알버커키로 옮겨졌지만 그때 그 떨리던 마음은 여전합니다. 지난 10여년간 부목사로서 교회를 섬길 때에는 담임목사님을 돕는 자로서 일을 했으니까 조금 덜 했지만, 이 곳 알버커키에 와서 한 교회를 책임 맡아 섬기는 자로서, 또다시 첫 목회지에서의 그 떨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이 계시기에 감히 저는 할 수있다는 확신을 가져 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우리들의 열심을 보시는 주님이시기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열심히 이곳 알버커키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어울리며 저의 젊음을 쓰고 싶습니다. 저를 알버커키 연합감리교회로 보내 주신 주님의 계획이 분명히 계시리라 믿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든든한 '빽'이 되시는 하나님,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자 오늘도 귀를 기울입니다. 첫 목회지에서의 그 떨리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며, 사람들을 찾아가고, 또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그려봅니다. 늘 떨리는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그 떨림 때문에 내가 주님 앞에 더욱 엎드려서 기도 할 수 있고, 그 때마다 주님께 더 의지하라는 것임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