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in Albuquerque
광야의 소리 News9904A.html

꽃 샘 추 위



송종남 목사

알버커키에 와서 아직 4계절을 모두 살아 보지 않았지만, 지난 가을과 겨울을 이 곳에서 지내면서 캘리포니아에서 맛보지 못했던 날씨를 만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알버커키 날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곳의 날씨가 한국과 같이 4계절의 뚜렷한 변화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이하면서 아직도 거무티티하기만한 나무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봄이 오려나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무에 푸릇푸릇 물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루 이틀 지내고 보니, 어느새 거리거리에는 분홍빛, 흰 색깔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보면서 마치 우리의 노래 '고향의 봄'에 나오는 복숭아 꽃 살구 꽃 생각이 나서 그리움이 목까지 차 오르는 향수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조금은 삭막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으로 알버커키의 겨울을 서둘러 보내려고 할 즈음이라 봄꽃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아, 이제는 정말 봄이 왔구나" 하면서 한껏 기지개를 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뚝 떨어지더니, 한 겨울 속으로 다시 우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소위 '꽃샘 추위'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저는 미국에서 몇 년 동안은 이 낱말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그 곳의 날씨는 항상 온화하기 때문에 약간의 기온 변화가 있을 뿐이지, 꽃샘추위라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눈보라에 봄꽃들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밤 기온이 너무 낮아지니까 기지개를 펴던 꽃눈들이 얼어죽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면서 몇 일을 조바심으로 보냈는데, 하루 이틀 지나자, 날씨는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다시 화사한 모습으로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꽃샘 추위를 이 곳에서 다시 만나면서, 저는 우리들의 일상 생활과 또 신앙 생활에도 이처럼 꽃샘추위와 같은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늘 따뜻한 봄날만 계속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늘 꽃을 피우는 미풍만 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우리네 삶 가운데도 꽃샘추위처럼 예기치 못했던 눈보라가 치고, 심한 바람이 부는 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그때마다 왜 내가 이런 어려움을 만나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낙담하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만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문제 해결은 훨씬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꽃샘 추위가 너무 심하면 1년 수확에 지장이 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아예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는 말을 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꽃샘추위 때문에 꽃들이 떨어지고, 어느 때는 나무에 달려 있던 열매까지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나 꽃샘 추위를 잘 이겨내고 살아 남은 열매는 나중에 어떠한 바람이 불고, 자연 재해가 오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에 탐스러운 과실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압니다.

갑자기 만나는 어려움과 시련 앞에서는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암담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을 우리네 삶 속에서 만나는 꽃샘 추위로 여겨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꽃샘 추위는 몇 일만 지나면 다시 화사한 봄을 우리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우리네 인생 길에서도, 때로는 춥기도 하고, 때로는 꽃잎을 떨구는 아픔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열매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꽃샘추위 자체가 이미 와 있는 봄을 다시 겨울로 되돌릴 수 없듯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헐벗음이나 다른 아무 것도 우리들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강하고 담대하여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들도 능히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계시기에 꽃샘 추위, 아니 더 큰 추위라 할지라도 능히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밖에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 또 여기 저기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 겨울을 보내고 새롭게 돋아난 연초록 잎새들... 이러다가도 또 언제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닥칠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꽃샘추위를 두려워하거나, 그것 때문에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내리쬐는 봄볕을 받으며, 그저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해 내며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고, 또 풍성한 가을을 준비합니다.

꽃샘 추위는 말 그대로 다만 봄을 시샘하는 추위, 꽃을 시샘하는 추위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