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in Albuquerque
 
광야의 소리 News9909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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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리운 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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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순 사모 
누구나 살아가면서 그리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또는 물건에 대한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그리움을 갖고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서 미국에 온 후, 지난 6월, 처음으로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 다닐 때에 미국에 와서 벌써 모두 중학생이 되었으니 그들은 한국이 어떤 모습인지 거의 기억에도 없을 듯한데, 비행기 표를 예약한 뒤부터는 한국에 가서 누구를 만날 것이고, 어디를 방문할 것이고 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며 적지 않게 설레이는 눈치였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나가면 이러 저러한 것들이 불편할 것이고, 또 적잖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이 곳 사람들의 염려를 뒤로하고 김포공항에 내렸습니다. 6월인지라 날씨는 푹푹 찌고, 처음 호흡을 할 때는 무슨 자동차 정비공장에 온 것 같다는 아이들의 표현대로 잠깐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아, 여기가 내 나라'라는 뭉클함이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것은 나나 아이들이나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지하철과 붐비는 버스 속에서 부딛는 사람들의 냄새는 미국 어디에서도 맡아 볼 수 없는 한국의 냄새였고, 설사 그들이 지나치다가 발등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 한다 해도 그것은 모두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가 사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아주 무뚝뚝한 지하철 매표원이 마치 기계처럼 보인다는 아이들의 말에도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고국을 이해시켰습니다.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이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아이들은 불평하나 없이 복잡한 서울 거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한국의 것을 보여 주고 느끼게 하고 싶어서 많은 박물관과 민속관을 찾아서 보여 주었고, 마침 강릉을 방문하였을 때는 단오제가 열리는 날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에 함께 어울릴 수도 있었고, 재래식 장터의 정겨움을 맛보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민속 박물관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우리의 옛것이어서 어른들도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이들은 이상하리 만큼 관심을 보이고 신기해하였습니다. 

한국의 많은 풍물과 자연과 역사를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나 제게 좋았던 것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있어서 늘 부모님을 찾아가고, 또 연락을 하면서 살지만, 태평양이라고 하는 망망대해를 건너 뚝 떨어져서 사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늙어 가시는 부모님에게 왜 없었겠습니까? 말씀은 안 하셨었지만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이랑 여간 그리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제 70을 넘기신 연세 때문인지 생각보다도 더 늙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대하면서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자식들에게 무엇인가 나눠주실 것을 풍성히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하면서 마냥 뿌듯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미국에 살면서는 사실 한번도 말을 안 했지만 다른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인 넉넉한 분위기를 맛보면서 너무 좋다는 표현과 함께 자주 이렇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온 후로 태어난 사촌들과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는데도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자신의 핏줄이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한국의 초록빛 자연에도 흠뻑 취했었습니다. 

경춘선을 타고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우리가 첫 목회를 하던 가평을 지날 때는 괜히 가슴이 뛰고, 왠지 창밖에 지나치는 누구라도 아는 사람일 것만 같아서 눈이 자꾸만 밖으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녹음이 짙어 가는 나무들, 말도 없이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의 물결들.. 아무리 쳐다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내 고향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한국의 공기가 아무리 안 좋다고 해도, 또 도로 사정에 비해서 차들이 너무 많아서 거리에는 질서를 찾아 볼 수가 없는 어지러움이라고 해도, 또 사람들이 다소 무뚝뚝하다 해도,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모두들 힘들다고 해도, 거기는 그리운 나의 조국, 나의 고향임을 어디를 가도 가슴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땀 내음이 싫지가 않고, 사람들의 부대낌이 오히려 사람 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인 것은 왜 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려운 유학생활의 힘든 터널을 지날 때에 기도로 또한 물질로 적잖이 도움을 주었던 신학교 동창들을 만난다는 것은 또다른 흥분을 내게 안겨주었습니다.  졸업 한 후에 거의 15년이 가까워 오는 세월이라 이제는 적당히 목사 티가 주루루 나기도 했고, 조금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목사님들... 그러나 제게는 언제나 한없이 좋은 친구들, 아직도 제 이름을 서슴없이 불러 주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쁘게 만나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나 다시 헤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아픔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했습니다. 
나는 오히려 참고 참았는데 아이들은 가족들을 붙잡고 오기 싫다고 울면서 떠나는 모습은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말과 생각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고, 우리를 있게 한 핏줄이 있고, 또 우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땅, 그 고향,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곳은 우리의 조국입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태평양 저너머를 바라보며 산같이 쌓여 가는 그리움을 안아야 했습니다. 

5년만에 방문한 조국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척, 아무리 어려워도 어려운 내색을 하지 않는 영원한 어머니의 품속 그 자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