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in Albuquerque

광야의 소리 2001 가을-2

성도 여러분! 도와주세요


 
 

               허 민수 집사

제 나이 열 네살, 중학교 2학년 때, 두툼한 비닐노트 일기장의 화두(話頭)는 '인생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였습니다. 그 답을 얻기까지 오랜 동안을 등에 짊어진 멍에처럼 힘들어 하며 방황했습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분류되는 人間의 군상(群像)들- 있어야 될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없어야 될 사람  삶을 살면서 세상 속에 빠져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염세주의에 몰두해 있던 저는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자학하면서 죽음까지도 여러 번 생각했었습니다. 나를 찾기 위한 내면의 몸부림, 끝없는 방황, 번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중략(中略)..........

별로 들어보지도 못한 뉴멕시코 주, 그것도 무슨 과자 이름같은 도시에 있는 알버커키 감리교회에서의 나의 인생의 출발은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 없이는 못 살겠네 " 하는 것이 깊은 늪과 긴 방황의 터널에서 벗어난 저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주 안에서 주 뜻대로 사는 것처럼 당당하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 治國 平天下)라 했습니까? 내 영(靈)을 맑게하여 뚜렷한 내 신앙관과 가치관을 정립하고, 내 아내와 가정을 소중하게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너무 사는 '맛' 이 납니다.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기회가 안 와도 O.K.  "지가 얼마나 잘나서  , 지가 얼마나 믿음이 좋기에  ." 가식(假飾)하는 바리새인의 얘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체면과 '척' 하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 냉수 먹고 이빨 쑤시듯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지금까지의 나의 잘못된 삶과 시행착오를 후회하고 가슴속 깊이 회개하며, 얼마만큼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에 중점을 두면서 속도보다 올바른 방향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혹시 이 결심이 깨지지 않을까, 중간에 흔들리지는 않을까  . 세상의 단맛(?) 을 아는 제가 모든 유혹과 시험을 뿌리치고 과연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내 십자가를 짊어지고 실족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와 주십시오. 믿음의 동행자가 되어 주십시요

한달 전쯤, 저희 세탁소에 K집사님이 옷을 맡기러 오셨습니다. 잠깐 차를 마시며 서로의 신앙체험을 얘기할 때, 뜨겁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모두 겸손히 머리 숙여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믿음 지켜주시고, 우리와 끝까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 뜨거움은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 남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알버커키 연합 감리교회가 창립된지 19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번 수련회에서 마지막날 밤 교회의 비젼을 각 그룹별로 토의할 때 모든 그룹이 우리 교회의 첫째 자랑거리로 우리 교회는 한번도 분열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민 교회가 개인의 사리 사욕때문에 너무도 자주 분열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교회는 그런 면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19년 동안 분열의 불씨가 한번도 없었겠습니까? 서로 진실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교만하지 않고 솔선 수범하는 겸손함, 서로의 믿음을 지켜주고 도와주며 지금까지 이끌어준 청지기들의 헌신적인 수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윗물이 맑으면 자연히 아랫물도 맑습니다. 그 동안 교회가 숫자적으로 많은 부흥을 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의 구원을 이루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마가의 다락방같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 있는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저 폭 넓은 인간관계의 교제를 위해서, 비즈니스를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빌어야 마음이 홀가분 하다는 기복신앙의 성도가 있다면, 그런 단계와 시야에서 벗어나  '예수가 진정 나의 인생의 구심점이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도록 권면하며 이끌어 주는 분위기가 형성이 돼 있는지요.   누구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모이기만 하면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성도는 없는지요? 네편 내편하며 편가르기 하는 성도는 없는지요? 주의 일에 봉사하는데는 비협조적이면서 뒤에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성도는 없는지요? 자기의 얼굴을 나타내기 위해 일하는 교만한 성도는 없는지요? 누구나 할 것 없이 그것이 나의 모습이요 우리 모두의 자화상 일수 있습니다. 좋은 전통은 하루 아침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진정 사랑하고 칭찬하는 마가의 다락방이 되도록,  이민생활에서 정신적 지주의 산실(産室)이 될 수 있도록 나부터 변화합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라는 이은상 씨의 시(詩)를 아십니까? 분명한 축복이 보이고 우리의 소망이 거기 있기에 한 사람도 낙오하지말고 사랑하고 절차탁마(切嗟琢磨)하며 고지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갑시다. 제자신도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저의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도 여러분! 기도로, 사랑으로 도와 주세요!